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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번역글/AVEN 번역

About Asexuality: 무성애에 대해

2020. 11. 7. 아래 내용은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 [링크] 을 새로운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이전 블로그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링크: http://www.asexuality.org/home/?q=overview.html

번역: 뚜벅쵸, 모래미

 

 

무성애자는 성적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인 비성관계 혹은 독신주의와 달리, 무성애는 한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고유한 정체성의 일부입니다. 무성애는 어떤 이의 삶도 더 나쁘거나 좋게 만들지 않으며, 무성애자는 그저 대부분의 유성애자와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을 뿐입니다. 같은 무성애자 집단에서도 무성애자는 제각기 다양합니다. 각각의 무성애자는 각자 다양한 관계, 끌림, 흥분을 경험합니다. 한편 무성애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관계(Relationships)

 

무성애자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감정적인 욕구(Need)가 있으며, 유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이런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합니다. 무성애자 중 어떤 이는 혼자 있을 때 행복하지만, 어떤 이는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또 어떤 무성애자는 더 긴밀한 로맨틱관계를 형성하고 싶어 하고, 연인관계나 장기적인 동반자 관계를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무성애자는 무성애자끼리 연애할 수 있는 것처럼 유성애자와 연애할 수도 있습니다.

 

성적이건 아니건, 모든 관계는 공통된 기본사항을 토대로 형성됩니다. 즉 성적이지 않은 관계에서도 소통, 친밀감, 즐거움, 유머, 신남, 신뢰 같은 것들이 성애적인 관계에서만큼 많이 나타납니다. 유성애자와 달리, 무성애자의 긴밀한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다들 잘 예상하지 못합니다. 성적이지 않은 관계에서 어떻게 관심을 표현하거나 긴밀하거나 독점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무성애자는 성적인 기대 없이 개인적 욕구에 기반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끌림(Attraction)

 

많은 무성애자는 끌림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무성애자는 그런 끌림을 성적으로 표현할 욕구를 느끼지 않습니다. 대신에 무성애자는 누군가를 알기 원하고,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가까워지기를 원합니다. 끌림을 경험하는 무성애자 중 몇몇은 특정한 젠더(Gender)에 이끌리기도 하고, 이런 무성애자들은 레즈비언·게이·바이·이성애자 무성애자로 정체화하기도 합니다.

 

 

 

흥분(Arousal)

 

몇몇 무성애자에게는 성적흥분이 꽤 주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으나, 이런 성적흥분이 섹스 상대를 찾으려는 욕구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몇몇 무성애자는 때로 자위를 하지만, 이런 무성애자라도 타인과의 성적 교류에 대한 욕구는 느끼지 않습니다. 또 몇몇 무성애자는 성적흥분을 거의 경험하지 않거나 아예 경험하지 않습니다. 무성애자는 섹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무성애자는 일반적으로 성적흥분이 없다는 점을 고쳐야 할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에너지를 다른 종류의 흥분이나 쾌락을 즐기는 데 집중합니다.

 

알아두기: 건강하기 위해 성적흥분이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성적흥분의 부재가 더 심각한 의학적 상태의 징후일 수 있습니다. 성적흥분을 경험하지 않게 되었거나 갑자기 섹스에 흥미를 잃었다면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정체성(Identity)

 

에이븐에 있는 대부분의 무성애자는 평생 동안 무성애자로 살아왔습니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뜻밖의 일이듯이, 무성애자가 유성애자가 되는 경우나 그 반대 또한 매우 드물고 뜻밖의 일입니다. 몇몇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스스로 무성애자로 정체화했다가 다른 정체성으로 정체화하기도 합니다.

 

한편 누군가가 무성애자인지 아닌지를 확정적으로 알려주는 테스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성애는 다른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게 돕기 위한 단어일 뿐입니다. 언제든 자신을 설명하는 데 무성애라는 단어가 유용하다고 판단한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