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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자의 역사 (Asexual history)

2020. 8. 16. 아래 내용은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 [링크] 을 새로운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이전 블로그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무성애자의 역사

Asexual history 

 

원문링크: http://wiki.asexuality.org/Asexual_history

번역: 모래미

검수: 뚜벅쵸, 포뇨, 포인트

 

* 원문에서 몇몇 부분은 다른 AVENwiki 항목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별도의 번역글로 올리려고 합니다.

 

 


무성애와 관련 있는 초기의 연구 사례들


1896년 마그누스 히르쉬펠트는 성애를 다루는 팜플렛을 저술했는데, 이 팜플렛에서 오늘날의 무성애와 비슷한 개념들을 다루었다.


1948년과 1953년에 걸쳐 알프레드 킨제이가 저술한 ‘킨제이 레포트’에서는 킨제이 척도(Kinsey Scale)에 “X”라는 범주를 추가한다. 이 범주는 “사회적으로 성적인 관계나 반응이 없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한편 1979년 마이클 스톰스가 제시한 2차원적인 성지향성 모델은 무성애를 포함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무성애는 이성 에로티시즘과 동성 에로티시즘 각각 두 개 축의 밑 끝에 위치해 있다.


폴라 너리우스는 1983년에 논문으로 낸 연구에서 대학생이 대부분인 비무선 표본 68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정신 건강과 성지향성의 관계를 조사했다. 이 연구는 이성애와 동성애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나, 양성애와 무성애도 성지향성으로서 다루었다. 설문조사의 결과, 응답한 무성애자들의 성적 활동에 대한 실제 빈도와 희망 빈도 모두 비교적 낮았다. 또한 연구에 참여한 무성애자들이 우울증, 낮은 자존감, 성적 불화를 겪는 경향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크다고 나타났다.

 

 

 

무성애자 커뮤니티의 등장


인터넷이 개발되기 전에는 무성애자들이 서로 소식을 주고받고 경험을 나눌만한 방법이 없다시피 했다. 1990년대 초·중반에 몇몇 사람들이 가끔씩 자신의 무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이나 성적끌림의 부재를 표현하는 글을 성애와 관련이 있는 인터넷 토론방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토론방의 검색 기능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글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또한 당시에는 무성애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필요한 공통된 단어와 정의가 아직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무성애적 정체성을 묘사하려고 무성애·반성애(Antisexuality)·독신주의(Celibacy, 혹은 비성관계로도 번역)·비성애(Nonsexuality) 등 다양한 단어를 사용했다.


최초의 온라인 무성애자 커뮤니티는 1997년 5월 30일 스타넷 디스패치(StarNet Dispatches)에 조 오레일리(Zoe O'Reilly)가 올린 글인 "아메바같은 내 삶(My life as an amoeba)"의 댓글란으로 추정된다.


2000년 10월 12일 '야후!(Yahoo!) 그룹'에 ‘인간 아메바를 위한 안식처(Haven for the Human Amoeba, HHA)'가 세워졌다. 이 그룹은 이메일 리스트를 기반으로 해 2000년 8월에 설립되었는데, 하루에도 여러번 메시지들이 오갈 정도로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회원들이 모여있었다. 이 때 회원 중 한 명이 무성애자 웹 링(Web-ring)을 만들기 위해 당시 막 에이븐의 메인페이지를 만든 데이비드 제이와 접촉했다. 그래서 데이비드 제이는 HHA의 토론에 참여했다. 그 외에 많은 회원들이 무성애자 웹 링의 일부로 자신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2001년 3월에 데이비드 제이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의 인터넷 공간에 ‘인간 무성애자의 가시화와 교육 네트워크(Human Asexual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 HAVEN)’이라는 페이지를 개설했다. 이것은 후에 ‘무성애 가시화 및 교육 네트워크(Asexual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 AVEN)’로 짧아졌다. 당시 여기는 무성애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고, 자신을 그 정의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받는 페이지였다.


HHA의 회원과 활동이 늘어나면서, 이메일 리스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HHA의 구조가 한계를 드러냈다. HHA에서는 모든 댓글이 이메일을 통해 전체 회원들에게 공유되었고, 그래서 별도의 스레드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좀 더 개선된 소통 구조를 갖춘 무성애 커뮤니티를 원하는 이들이 있었고, 각기 무성애에 대해 다양한 정의와 생각을 갖춘 여러 웹사이트가 생겨났다.


이 당시에 만들어진 몇몇 커뮤니티는 무성애를 오직 리비도가 없는 정체성(Non-libidoism)으로만 정의했고, 무성애자는 성적충동을 느끼지 못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지금은 없어진 ‘공식 무성애자 협회(Official Asexual Society)'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웹사이트는 HHA 회원인 게랄딘 레비 요스텐-반 빌스턴(Geraldin Levi Joosten-van Vilsteren)이 설립했고, 참여하려는 사람에게는 사이트 설립자가 시행하는 정체성 테스트가 있었다. 그 후 대안적이고 보다 폭넓은 무성애 정의가 인기를 얻자, 2004년 12월 말에는 이름이 ‘공식 논리비도이스트 협회(The Official Nonlibidoist Society)’로 바뀌었다.


한편 반(反)성애주의적 관점에 영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2001년 7월 라이브저널(LiveJournal)에 커뮤니티 이름으로 ‘무성애자(Asexual)'라는 단어를 사용한 ‘무성애자 커뮤니티(the Asexuals Community)’가 개설되었다. 이 커뮤니티는 독신주의를 선택한 유성애자와 “섹스에 뭔가 의미를 가지지 않은 이상, 섹스는 너무 과대평가되고 있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또한 2002년 4월 28일 라이브저널에 ‘라이브저널 무성애 커뮤니티(LiveJournal Asexuality Community)'가 세워졌다. 이 커뮤니티는 라이브저널 회원명으로는 ’36|Nat‘이고, AVEN 회원명으로는 ’Paranoid Gynandroid‘인 한 회원이 라이브저널 무성애자 커뮤니티의 섹스에 부정적인(Sex-negative)인 글들에 대응하여 개설했다. 36|Nat은 주로 ’스피어(Sphere)'라는 메일링리스트 등 초기 젠더퀴어/제3의성(Third Gender) 커뮤니티를 통해 지향성으로서의 무성애에 대한 여러 토론에 참가했고, 이후 HHA와 AVEN과는 별개인 라이브저널 무성애 커뮤니티를 세운 것이다. AVEN 포럼보다 한 달 앞서 생겨난 이곳은 처음으로 섹스긍정주의를 표방한 무성애자 토론 커뮤니티였다. 이 커뮤니티는 포용적이어서 커뮤니티 내에서는 무성애를  ‘성적 충동이 없거나 매우 적은’ 혹은 ‘성애 없이 일상을 지내는’ 정체성으로 묘사하는 정의가 사용되었고, 설립자인 36|Nat은 무성애를 성지향성으로 정의했다.


이 시기에 AVEN은 성중립과, 성적충동이나 다른 요소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은 확실히 무성애자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더 열려 있는 선택지를 이루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재구축되었다. 2002년 5월 29일 AVEN 포럼이 발족했고, 다음날에는 AVEN의 도메인을 ‘asexuality.org'로 새로 옮겼다. 2002년 5월 데이비드 제이는 36|Nat과 접촉했고, 곧 라이브저널 무성애 커뮤니티는 프로필에 AVEN 링크를 달았다. 같은 해 7월과 8월 36|Nat은 데이비드 제이와 함께 무성애의 포괄적이고 섹스긍정주의적인 개념의 기초가 된 ’AVEN FAQ'의 초기 버전을 작성했고, 초창기 AVEN 포럼 커뮤니티의 형성에도 관여했다. 이 FAQ는 여전히 현재의 ‘종합 FAQ(General FAQ)'의 기반이 되고 있다. 

 

 


무성애에 관한 최근의 연구

 

1994년 영국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18,876명의 영국인 중 1%의 응답자가 “누구에게도 성적으로 끌리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서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앤서니 보개트(Anthony Bogaert) 박사는 무성애자에 대해 인구학적인 조사를 하는 한편, 2004년부터 무성애에 대한 여러 논문을 내고 있다. 2004년 보개트 박사가 논문을 낸 이후 무성애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었는데, 예를 들어 로리 브로토(Loli Brotto) 박사의 연구가 그 일부이다. 그러나 무성애를 논하는 문헌은 아직 비교적 드물다.

 


무성애자들의 프라이드 퍼레이드(성소수자 자긍심 행진) 참가


2009년 AVEN 회원들은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행진했는데, 이는 무성애자들이 미국의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가한 첫 사례이다. 그들은 이어서 2010년의 퍼레이드에도 참가했고, 2011년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에서 행진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AVEN 회원들도  2009년부터 몇 년 동안 다양한 프라이드 퍼레이드와 관계를 맺었고, 2010년부터는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행진하고 있다.

 

 


무성애자를 위한 법적 보호 정책

 

뉴욕
2010년 6월 17일 미국 뉴욕 주 인권국은 차별 고발 양식(Discrimination Complaint Form)에 기재되어 있는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성지향성 범주에 무성애자를 포함시켰다. 무성애자는 ‘성지향성에 따른 차별 금지법(SONDA)’으로 보호를 받게 되었다.


버몬트
2010년 미국 버몬트 주는 무성애자를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성지향성 리스트의 일부로 포함시켰다.

 

 

 

무성애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저활동성 성욕장애(HSDD)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과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 통계 분류 10판(ICE-10)은 현재 무성애의 다양한 형태를 장애로 정의하고 있다. 1973년 DSM에서 동성애가 없어졌고, DSM-5에서 트랜스젠더가 더 이상 “장애”로 분류되지 않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DSM과 ICD에서 무성애와 관련된 진단명은 시간에 따라 아래와 같이 바뀌어 왔다.

DSM-III - 억제된 성적욕구 (Inhibited sexual desire, ISD)

DSM-III-R - 저활동성 성욕장애 (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 HSDD)

DSM-IV-TR - 저활동성 성욕장애에 “뚜렷한 괴로움이나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이라는 새로운 진단 기준이 붙음. 그 이전까지 저활동성 성욕장애는 그저 낮은 성적욕구에만 진단되었음.

DSM-5 - 여성 성적관심/흥분장애, 남성 저활동성 성욕장애

ICD-10 - 저활동성 성욕장애

 

DSM-5의 개정 제안: 2008년 6월 데이비드 제이는 ‘트랜스젠더의 평등권을 위한 전국 센터(National Center for Transgender Equality)’의 이사인 마라 카이슬링(Mara Keisling)을 만났다. 이 때 마라 카이슬링은 무성애자 커뮤니티가 DSM-5의 성장애 부분 수정을 논의하는 위원회와 접촉해 보라고 제안했다. 제이는 Mandrewliter와 에이븐 회원 몇 명을 모집했다. 이들은 DSM의 성기능장애 작업 집단과의 대화를 통해 저활동성 성욕장애의 정의가 지향성으로서의 무성애를 수용할 수 있도록 개정하고자 했다.


2013년에 DSM-5가 나왔다. DSM-5에서는 성장애로 “여성 성적관심/성적흥분 장애”와 남성 저활동성 성욕장애가 남았지만, 그 진단 기준에서 자기 스스로를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하는 개인은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