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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일지도 몰라 - 1부: 당신에 대하여

2020. 8. 23. 아래 내용은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 [링크] 을 새로운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이전 블로그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1부: 당신에 대하여

Posted on March 21, 2012
원문링크: http://www.asexualityarchive.com/possible-signs-of-asexuality-part-1-about-you/

번역: 세한, 뚜벅쵸

검수: 모래미

 

 

 

성적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모든 무성애자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입니다. 그것이 무성애의 정의니까요. 하지만 이런 정의는 무성애자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정의는 부정법을 통해 무성애를 규정하는데, 이런 방법은 자신이 무엇을 부정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경우에는 유용하지 않거든요. 마치 “당신이 ‘조녹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비조녹스자’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녹스가 뭔지도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조녹스를 본 적이 없는지를 알 수가 있겠어요? 당신은 조녹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뭐라고 불리는지 몰랐을 뿐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자신이 조녹스를 봤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은 “글쎄, 조녹스를 봤다면 알 텐데요.”일 겁니다.

 

※역자주: 여기서 조녹스xonox는 무성애자에게 성적끌림이 어떤 느낌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의미가 알려지지 않은 단어를 따온 것이므로 발음 그대로 조녹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신이 정말로 무성애자인지를 알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성적끌림이 뭔지도 확실히 모르는데다가, 아무도 당신에게 성적끌림이 뭔지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당신 자신이 성적끌림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는지를 알 수 있겠어요? 제 경험상, 대부분의 무성애자는 이 정의를 읽는 걸로 자신이 무성애자임을 깨닫지는 않아요. 대신 다른 사람이 블로그나 포럼에 쓴 글을 읽거나, 무성애에 대한 뉴스 기사나 유튜브 비디오를 보고는, “저거 내 얘긴데?”라고 생각하죠.

 

모든 무성애자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이 성적끌림의 부재뿐일지라도, 공유된 경험의 집합, 즉 어떤 무성애자들이 느껴온 비슷한 점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공유된 경험이야말로 종종 사람들이 자신이 무성애자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죠. “무성애일지도 몰라(Possible Signs of Asexuality)” 시리즈에서는 그 중 몇 가지를 다룰 것입니다.

 

(꼭 알아두세요: 모두에게 공통되는 무성애자의 특질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 나오는 사항 전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하지는 마세요. 심지어 저도 이걸 전부 경험해보지는 않았어요. 이 글은 체크리스트나 “내가 무성애자인가요?” 테스트나 뭐 그런 걸로 활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 나오는 것 중 아무 것도 경험해본 적이 없더라도 무성애자일 수 있고, 여기 나오는 것 대부분을 경험해봤어도 무성애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무성애자인지 여부를 확정해주는 진단적 테스트도, 27가지 요점 체크리스트도 존재하지 않으며, 무성애자이기 위해 가입절차를 통과하거나 내부회원의 추천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의 성지향성을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 자신뿐입니다.

 

또한, 저는 여기 나오는 생각이나 경험을 모든 무성애자의 의심할 여지 없는 통합적 신념 체계의 매니페스토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해두고 싶습니다. 옳은 경험이나 그른 경험 같은 건 없어요. 그리고 확실히, 여기 나오는 경험들 중 일부는 오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 무성애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해왔기에, 그리고 여전히 그 과정에 있으며 지금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이 생각들에 대해 말해두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기에 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 글에서, 저는 주로 당신의 개인적 생각 및 당신 자신과 그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시리즈의 게시물로 가는 링크입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1부: 당신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2부: 섹스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

 

섹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로맨틱한 동기로 하고 싶은 활동에 대해 생각할 때, 섹스가 거의 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섹드립의 웃음포인트를 잘 못 잡을지도 몰라요. 그런 것에 대한 참조틀이 없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이 섹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이 그런 류의 것을 생각한다는 것을 기억해내기 위해 잠깐 고민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7초에 한 번씩 섹스 생각을 한다는 옛 통계에 대해 들을 때면, 당신은 그 통계가 잘못됐다는 생각만 합니다. 

 

 


남들은 다들 섹스에 대해 당신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깨달음은 마침내 저를 경계 너머로 넘겨버렸습니다. 어느날, 저는 전날 본 TV 쇼의 섹스 장면에 대해 한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대체 어떤 상황이었던 것인지 위치와 역학을 도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죠. 도저히 이해가 안 됐거든요. 대화가 이어질수록, 제가 잘못된 것에 집중하고 있음이 명백해졌습니다.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해당 장면을 믿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취해야 할 불가능하거나 불편하게 뒤틀린 자세가 아니라, 섹스였습니다.

 

이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종종 영화나 TV 쇼의 장면에 대해 이상한 점이 있다고 느껴서 나중에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곤 합니다. 이상했던 것은, 대화의 단 한 지점에서도 제가 “오우 야, 섹스! 우왕!”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제가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 한 번도요.

 

그래서 저는 제 인생을 되돌아보며, 과거에서부터 제가 겪은 다양한 성적인 상황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충격이었던 건, 그 중 거의 모든 경우에 제가 다르다고 느낄 만한 뭔가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간 통틀어 한두 번이었다면 우연일 수도 있겠죠. 한 해 여름 동안에 그런 일 몇 번이 한꺼번에 있었다면 그건 잠깐 지나가는 시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경우, 사춘기가 시작한 이후로 20년 가까이 일관적으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릴 때면 뭔가 달랐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섹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는 섹스하자고 나를 설득하려면 매우 집요하게 굴어야 했다.

나는 대부분의 포르노가 지루하거나 끌리지 않는다.

나는 섹스에 대한 대화가 있으면 보통 멍하니 있는다.

나는 “(섹스를 하려는) 충동”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총각 파티를 왜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또, 거기에 또, 이런 목록이 계속됐습니다. 섹스에 대한 제 관점이 제가 이야기를 나눠 본 어떤 이와도 전혀 다르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이건 어떤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인 뭔가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체 저 자신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찾아내기 위한 탐색을 시작했고, 무성애라는 개념을 찾아냈습니다.

섹스의 로맨틱하거나 성적인 측면이 아닌 인류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섹스에 흥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지리학이나 동물학에 대한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참여할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죠. 섹스에 대해 다 알고 싶어서 성적인 활동이나 그 실례(實例), 변형, 조합에 관한 모든 글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뭐든 실행하는 데에는 흥미가 없겠죠. 포르노 영화보다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를 봅니다. 펜트하우스(역자주: 미국의 유명 포르노 잡지)보다는 킨제이 보고서(역자주: 인간의 성적행동을 다룬 보고서)를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요.

 

이런 이유로, 당신은 때로 남들은 보통 섹스를 지적 호기심의 일환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이들이 당신의 개방성에 놀라거나 당황할 만한 맥락에서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여기에 상당히 긴 세월을 넣으세요.] 동안 섹스를 하지 않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섹스 없이 보름쯤 지내는 걸로 그렇게 괴로워하는 걸까요?

 

보통(모두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긴 시간 동안 섹스를 하지 않아도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당신이 무성애자에게 ‘너는 10년간 섹스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면, 상대는 아마 “그래, 뭐 어때.” 정도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비무성애자에게 같은 말을 한다면, “불가능해! 난 폭발할 거야!” 같은 대답이 돌아올 확률이 높겠죠. (다시 말하지만,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위와 같은 식으로 느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두 달간 섹스를 못 해서 얼마나 끔찍한지 불평하는 사람들을 봤죠. 관심을 끌려는 선전의 일환으로 일 년 내내 섹스하지 않고 보낸 DJ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생식기를 일정 기간 내에 다른 이의 위에서, 혹은 다른 이의 손으로 비워주지 않으면 말 그대로 압력에 의해 폭발할 것처럼 말하는 이들을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몇 년간 섹스를 하지 않았고, 섹스가 전혀 그립지 않아요. 섹스의 부재가 어떤 사람에게는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제게는 완전히 낯선 것입니다.

 

그래서…

섹스가 당신에게 완전히 낯선 어떤 것이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TV와 영화에 나오고, 이것을 다루는 잡지와 노래,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에 집착합니다. 그들은 평생 이것만 좇을 수도 있고, 때로 이것이 그들을 망칩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순진하거나 온실 속 화초이거나 잘 모른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왜 이런 것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토록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들이 외국어로 얘기하고 있거나, 거시경제학이나 17세기 프랑스 문학의 복잡성과 뉘앙스 및 당신이 관심없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이건 그러니까 남들 모두 당신은 관심없는 스포츠의 팬인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당신은 경기를 볼 수 있고, 규칙을 알고, 심지어 한두 번 해봤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3루를 밟거나 터치다운을 따내는 것에 왜 그리 열광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거죠.

 

나는 이성애자(/동성애자/양성애자/기타 등등)인데 그쪽으론 별로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저는 제가 무성애자임을 알기 전 몇 년간 이런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고, 가끔 막연하게 관심을 가진 상대는 다 여자였으니, 이건 명백히 제가 이성애자라는 의미죠, 맞나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섹스를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섹스를 하려 들지도,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앞에 쓴 그 여성들을 생각할 때면, 저는 함께 휴가를 가거나 추억의 비디오 게임을 찾아 동네 중고품 가게를 뒤진다거나 하는 것을 생각했지, 침대로 데려갈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것이 제가 이성애자이지만 별로 그쪽에는 밝지 않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죠.

 

이후에 제가 무성애자임을 알게 됐을 때, 무성애 포럼에서 이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느낀 적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수에 놀랐죠. 그 중 몇몇은 심지어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똑같은 어구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기본값에 의해 나는 이성애자인 게 확실해.”라고 생각해왔다면

 

무성애자임을 알기 전까지 이렇게 느꼈다고 하는 사람을 둘 봤습니다. 사람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여야 하고, 예외도 대안도 없다는 가정이죠. 모두가 이 세 개의 통 중 하나에 들어가야 하고,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겁니다. 그들은 동성에게 끌림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일 리는 없었고, 따라서 그들은 기본값에 의해 이성애자여야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남은 통이었으니까요.

 

저는 이것이 무성애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좋은 생각 훈련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세 집단만이 선택지라고 합시다. 확실히 동성에게 끌리지 않기에 자신이 동성애자는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어떤 증거도 없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어느 통에 넣겠습니까? 이 사람을 “이성애자” 통에 넣을 이유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성애자니까”밖에 없는데, 이걸 누군가에게 정체성을 부여할 이유라고 하기에는 웃기죠.

 

이건 세상에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사람, 둘 다 좋아하는 사람 세 종류만 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채식주의자를 만나서 당신의 한정된 시야 안에 맞추려고 하는 거죠. “닭고기 좋아하세요?” “아니요.” “음, 그럼 당신은 기본값에 의해 스테이크를 좋아하겠네요.” “하지만-” “당신은 스테이크를 좋아해요. 얘기 끝.” 여기서 알아둬야 할 “해당 없음” 선택지가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스테이크나 닭고기를 좋아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남성이나 여성을 좋아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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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섹스와 성적 행위를 중심으로 한 글을 올리려 합니다(관심없다면 내일 글은 넘길 수도 있겠죠). 셋째날은 당신 자신 외의 것들, 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게시물로 가는 링크입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1부: 당신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2부: 섹스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