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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

2020. 8. 23. 아래 내용은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 [링크] 을 새로운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이전 블로그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

 

Posted on March 23, 2012

원문링크: http://www.asexualityarchive.com/possible-signs-of-asexuality-part-3/

번역: 뚜벅쵸

검수: 포뇨

 

 

 

이 글은 3부로 이루어진 무성애일지도 몰라(Possible Signs of Asexuality) 시리즈의 3번째 글입니다. 여기서 다루는 항목들은 결코 “제가 무성애자 맞나요?”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 아니므로, 당신이 그 중 어떤 항목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제가 봐온 무성애자들이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경험들을 정리해 놓은 것뿐이에요.


이 시리즈의 1부에서는 주로 당신이 당신 자신이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왔을 법한 것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2부에서는 섹스와 성적 행위에 대한 생각을 다뤘죠. 오늘은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것들에 대한 생각을 주로 얘기하려 합니다.

이 시리즈의 게시물로 가는 링크입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1부: 당신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2부: 섹스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

 

 

“섹스하고 싶다”거나 “해버려야겠어”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다면

사람들이 무성애자로서 자각하는 비교적 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남들이 이런 것에 대해 얘기하거나 의도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죠. 이해할 수 없게도, 누군가는 다른 사람(종종 아예 모르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과 섹스하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 생각이 사람들의 행동을 조종하기도 합니다.

무성애자 중 몇몇은 이런 걸 괴상하다고까지 생각할지도 몰라요. 왜 그런 걸 하지? 이들이 같은 상황을 볼 때와 개념 자체가 아예 다르니, 그런 행동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죠. 어떤 무성애자에게는 “저 사람과 섹스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거의 “저 사람을 파란색으로 칠하고 나뭇가지로 덮은 다음에 밤새 그 주위를 돌며 춤추고 싶어” 수준으로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타인을 “뇌쇄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면. 아마도 “귀엽고”, “예쁘”지만, “뇌쇄적이야”는 아니라면

무성애자 일부는 “뇌쇄적이다”를 비롯해 누군가의 성적 매력을 표현하는 단어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관적인 미의 정도를 “못생겼다”부터 “예쁘다”까지 순위매길 수 있고, 때로는 누군가를 “귀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뇌쇄적이다”라는 단어는 피하는 무성애자들이 꽤 있죠. 그 개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보고 남들이 그 사람을  “뇌쇄적”이라고 분류할지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저 그걸 느끼지 않을 뿐이에요. 타인이 “뇌쇄적이다” 같은 단어를 쓸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뭔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내적 스위치 같은 것이 켜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 단어가 단순히 “귀엽다”나 “예쁘다” 같은 단어들의 유의어나 하위 범주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요. 그들에게 그 단어는 “시각적으로 매력이 있다” 이상의 의미가 있죠. 그 뒤에는 그들이 “예쁘다”보다 “뇌쇄적이다”를 선택하게 만드는 뭔가가, 어떤 감각이, 어떤 반응이 있고, 우리는 그 감각이 뭔지를 경험하지 않습니다.

또한 “섹시하다”는 단어도 당신의 이해 범위 안에는 없어요.

 

 

다들 섹스에 관심있는 척 연기하는 줄 알았다면

많은 무성애자들이 살면서 언젠가는 섹스에 대해 “벌거벗은 임금님” 류의 관점을 가졌던 적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다들 남들이 섹스를 좋아하니까 자신도 그런 척하고 있고, “아니, 사실 난 그거 별로야”라고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적인 것 중심의 문화가 동조를 강요하게 됩니다.

이 관점은 십대 시절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들은 다들 남자애나 여자애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무성애자는 자기 자신 외에는 딱히 느끼는 게 없는 거죠. 사춘기는 각자 다른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에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으려니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남자애에게든 여자애에게든 관심을 가지는 시기가 아예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래서 “음, 나는 섹스에 전혀 흥미가 없어, 그러니 아마 남들도 마찬가지겠지. 아마 걔들은 다 어울리려고 연기하는 걸 거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섹스에 관심있는 척 연기했다면

때로, 어떤 무성애자들은 주변과 어울리기 위해 섹스에 관심있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낍니다. 친구들 모두 자신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대상에게 빠져 있는데, 당신은 누구에게도 그런 느낌이 없는 거죠. 그래서 당신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런 질문이 나올 때까지요...

“그래서, 너는 누가 좋아?”

...그리고 당신은 조니나 샐리에 대해 뭔가 둘러댑니다. 그들에게 정말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실제 어떻게 느끼는지를 숨기기에 쓸만한 선택지라고 생각해서죠. 왜냐하면, 당신의 실제 느낌에 대해 말하면 친구들이 당신을 그저 비웃고 괴짜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렇게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계속 그걸 유지하죠. 결국 당신은 심지어 어떤 관계를 만들 수도 있고, 그 뒤에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섹스를 좋아하는 척했다면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섹스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성적 거부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거부나 사랑받지 못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요. 자신의 파트너가 특정 활동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니고요. 어떤 관계에 있는 무성애자들에게는 이것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실하게, 미친 듯이, 깊게, 끝없이 사랑하면서 그저 섹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자신이 이렇게 느낀다는 걸 파트너가 알면 사랑을 의심받고 결국 관계가 끝장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하죠. “만약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나와 섹스하고 싶어했겠지.”

심지어 섹스를 즐기는 무성애자이면서도 자신의 파트너에게 자신이 그들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기를 두려워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끌리는 것처럼 연기하며 “넌 섹시해”나 “널 보면 흥분돼” 같은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섹스는 사랑이 아니고, 사랑은 섹스가 아니에요.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사람과 섹스하고 심지어 즐길 수도 있습니다. 

 

 

섹스에 대한 대화가 재미없다면

친구나 동료들은 섹스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타인이 뭘 했다고 들었는지에 대해 얘기하길 즐기죠. 총각(처녀) 파티나 원나잇에 대해 뽐냅니다. 누가 얼마나 섹시하고, 그 사람을 섹시하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합니다. 배달원이나 접수 담당자, 식당 종업원에 대해 노골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죠.

그리고 당신은 1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타인에 대해 말할 때, 가령 종업원이 “뇌쇄적이”라거나 배달원이 “끈적하”다는 얘기를 할 때, 당신은 아예 그 사람들을 눈치도 못 챘을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그들이 파티나 원나잇에 대해 얘기할 때면, 당신은 같이 얘기할 만한 공감대가 없을 가능성이 높죠. 그들이 그런 얘기를 시작하면 당신은 그저 멍하니 대화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둡니다. 때로 사람들은 당신이 조용해졌다는 것을 눈치채고 대화 주제가 거북했나 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죠. 당신은 아무 생각도, 평도, 질문할 것도 없어서 조용해진 겁니다.

 

책이나 TV, 영화 속 섹스 장면이 뜬금없거나 노잼이라고 느낀다면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녀 주연이 이유도 없이 그걸 시작합니다. [빨리감기!]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터질 듯한 가슴”이나 “사랑의 주스”가 나옵니다. [다음 장!]

아마 “어우, 기분 나빠” 같은 걸 수도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더 많은 경우에 이건 “얘네 왜 이러는 거야? 뭐하냐? 본론으로 돌아가!” 정도의 감각이죠. 절반쯤의 확률로, 이런 성적 장면의 등장은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작위적입니다. 때로 당신은 작가가 편집자나 감독을 만나서 “섹스를 좀더 넣어, 올해 평점이 낮단 말야”라는 말을 듣고 등장인물 중 누가 그걸 해야 할지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장면까지 상상할 수도 있죠.

 

포르노의 발연기와 허접한 스토리가 정말 짜증난다면. 왜냐면, 아니 애초에, 좋지도 않은 영화를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아, 제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면, 저 의사는 체포됐겠지. 저 사람 연기 너무 못 해. 대본을 본 적은 있는 거야? 저 싸구려 세트는 또 뭐야! 병원인데 혈압 어쩌고나 설압자 통이나 종이가 올려진 침대 같은 건 어디 있어? 저 침대는 50년대 싸구려 군수품 간이침대 같은데! 저거 분명 소독도 안 했을 거야! 저건 또 뭐야? 저 여자 왜 신음소리를 내는데? 저 남자는 아예 여자 근처에 있지도 않잖아! 지금 뭐 하는 설정이지? 저 여자 계속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있잖아. 남자는 계속 화면에서 벗어나고… 저거 감독은 배우들이랑 이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 얘기도 안 해봤나? 내가 왜 이딴 걸 봐야 해? 

 

 

남들에게는 섹스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데, 당신은 노력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남들은 본능적으로 섹스를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당신의 파트너는 노력 없이도 그걸 다루는데, 당신에게 섹스는 자연스러운 애정표현이라기보다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그들만의 비밀 인사법을 따라해 보려고 서툴게 움직이는 모양새가 되고 말죠. 마치 다른 사람들은 뭔가 고강도 전지훈련을 다녀와서 뭐든 다 아는데, 당신은 일일이 직접 해보면서 확인해야 하는 꼴입니다. 심지어 그렇게 하더라도, 남들은 다 아는 어떤 비밀, 즉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있고, 당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비밀을 결코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죠. 

 

 

조건도, 후회도, 결과도 없는 성행위 기회가 오더라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면

흔히들 이런 가상의 상황을 제시하죠. “임의의 섹시한 사람 X가 네 앞에 나타나서 ‘하자’고 한다고 쳐. 할 거야?” 많은 경우 대답은 명백하고 즉각적인 “그래”입니다. 아니라면, “안 돼, 남친이 허락 안 할 걸.” 정도죠. 하지만 당신의 반응은 말하자면 이런 식이죠. “음, 모르겠는데… 오늘 금요일이잖아. 프린지(Fringe, FOX TV에서 방송한 수사 드라마. 초자연적 사건을 다룬다) 본방이야. 녹화할 수야 있겠지만, 하루종일 그거 볼 생각만 했는데.”

 

섹스를 먼저 시작한 적이 없다면

당신은 섹스를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의 파트너가 완전 별로인 것도 아니죠. 그저 당신이 그 생각을 전혀 못 할 뿐입니다. 아예 떠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당신은 “당장 섹스하고 싶어. 내 파트너도 생각이 있는지 보러 가야겠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죠.

당연하지만, 이런 것이 관계에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당신의 파트너는 결국 자신이 항상 모든 일을 한다고 느끼고, 심지어 당신이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먼저 시작하려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어요. 

 

 

작업 거는 것(flirting)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심지어 당신 자신이 작업을 걸고 있을 때조차도.

무성애에 대한 대화에서 이런 얘기를 몇 번 봤습니다. 저도 그런 적이 좀 있었는데, 저 스스로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업 거는 데 선수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 누가 저에게 추파를 던지든 저는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그리고 만약 눈치채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죠). 몇 시간이 지나고 그 대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을 때에야 뭔가 어긋났다는 걸 깨달을 겁니다.

어느 휴가 때, 저는 공원에서 직접 만든 입체 카메라로 3D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어떤 여성이 저를 불러서는 카메라에 대해 물으며 자신도 사진을 찍는다는 얘기를 했어요. 1~2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저는 다시 공원을 돌아다니는 걸 계속했죠. 그리고 제 차로 돌아가는 길에 벤치를 지나쳤는데, 그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큰 소리로 탄식하고 있었어요. “이 동네 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디 간 거야?”

그 여성이 제 카메라에 그리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저는 말 그대로 다른 주(state)에 있었습니다.

 

 

 

* * *

 

 

제가 무성애의 단서일 수 있는 것을 모두 다루지 않았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분명 여기 나온 것 중 몇 개에 대해서 당신의 의견은 다르겠죠. 심지어 여기 썼어야 할 것들이 더 생각나기 시작하지만, 계속 더하고 더하다 보면 마감하고 올릴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언젠가 4부를 쓰게 될 수도 있겠네요... 

 

 


이 시리즈의 게시물로 가는 링크입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1부: 당신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2부: 섹스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

 

 


(그건 그렇고, 혹시 1편에 나왔던 ‘조녹스’가 궁금했다면, 이게 그겁니다. 다른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그냥 아무 의미 없는 단어가 필요했는데 이게 떠올랐을 뿐이에요. 그냥 제가 이런 덕후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