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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일지도 몰라 - 2부: 섹스에 대하여

2020. 8. 23. 아래 내용은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 [링크] 을 새로운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이전 블로그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2부: 섹스에 대하여

 

Posted on March 22, 2012

원문링크: http://www.asexualityarchive.com/possible-signs-of-asexuality-part-2-about-sex/
번역: 뚜벅쵸

 

 

이 글은 총 3부로 이루어진 무성애일지도 몰라(Possible Signs of Asexuality) 시리즈의 두 번째 글입니다. 여기서 다루는 항목들은 결코 “제가 무성애자 맞나요?”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 아니므로, 당신이 그 중 어떤 항목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제가 봐온 무성애자들이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경험들을 정리해 놓은 것뿐이에요.


이 시리즈의 1부는 주로 내적인 부분, 즉 당신이 당신 자신이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왔을 법한 것들에 집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섹스와 성적 행위를 위주로 다룰 것입니다. 만약 이 주제를 읽고 싶지 않다면, 이 글은 건너뛰고 3부에서 결론까지 읽으면 됩니다. 

이 시리즈의 게시물로 가는 링크입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1부: 당신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2부: 섹스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

 

 

 

섹스할 시간에 ㅁㅁ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면

섹스에 대해 생각할 때면, 당신은 섹스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수십 가지는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제 경우에는 섹스보다는 책을 읽는 게 더 좋아요. TV를 보는 것도 좋고, 게임도 좋고, 영화관에 간다거나, 별을 관찰하거나, 개를 산책시키거나, 쇼핑하는 것도 괜찮고, 책장의 책들을 저자의 생일 순으로 정리한다거나, 새를 관찰하러 가거나, 레고로 캐나다 수상 헌정 작품을 만든다거나, 잔디를 깎거나, 에스페란토어를 배우거나, 연을 날리거나, 케이크를 먹거나... 

 

 

섹스 없는 섹스 꿈을 꾼다면 

 

저는 “성인용” 경고가 붙은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모기지론 상환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벌거벗은 여자들이 저에게 몸을 던지는데 그들에게 저는 바쁘고 가 볼 데가 있다고 말하는 꿈을 몇 번 꿨습니다. 여자들이 딱 봐도 저에게 다가오고 있는데 완전히 놓치는 꿈도요. 꿈 속의 여자들에게 추워 보이니 옷을 입으라고 말하곤 하죠. 비유하자면 제 뇌에서 꿈을 만드는 부분은 제가 무성애자라는 걸 모르고 계속 섹스 꿈을 꾸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뇌의 나머지 부분이 그걸 처리하지 않아서 매번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는 느낌이에요.

많은 무성애자들이 어떤 종류든 섹스 꿈을 아예 꾼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섹시”한 의상이 그저 불편하거나 추워 보이고 왜 그런 걸 입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꼭 끼는 바지는 입은 이의 목숨을 쥐어짜낼 것 같아 보입니다. 만약 그걸 남자가 입고 있다면 고통스러울 것임을 알 수 있죠. 힐을 볼 때면 곧 일어날 발목 골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날씨에 배가 드러나는 셔츠를 입는 건 얼어죽겠다는 거죠. 레이스는 그저 피부에 기묘한 자국을 남길 뿐입니다. 끈 속옷은 실톱마냥 당신을 반으로 잘라버릴 것처럼 생겼어요.

그리고 저는 화장이 무슨 의미인지도 전혀 모르겠네요. 

 

 

성적인 공상에 빠지지 않는다면

남들은 다 시야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옷을 벗기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들은 다 훈남훈녀를 유혹해 이것저것 하는 상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남들은 다 “해버릴”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닙니다. 죄악이라고 생각하거나 뭐 그런 이유로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안 하는 겁니다. 그저 당신의 사고회로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사고회로가 지속적으로 누군가와 잠자리를 함께하는 상상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심지어 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성적 판타지를 만들어 보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야 속의 타인을 벗기는 상상을 해보려고 했으나 어떻게 브라를 벗기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거나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겨우 상상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 희열과 열정의 완벽한 혼합체가 아니라 뜨겁고 무거운 무언가라면, 디테일의 늪에 빠져 집중을 못 하게 됩니다. 이 판타지의 내용을 유지하는 데 너무 힘을 쏟다보니 거기서 얻고 싶었던 어떤 쾌락이든 사라지는 거죠.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떤 무성애자들은 섹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그것에 대해 듣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이 섹스에 대해 듣고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나이쯤에, 그들은 “나한테  가지고  하라는 거야? 안 해. 그냥. 안 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무성애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의 무성애자가 섹스를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려고 노력하다가 자신이 무성애자임을 알게 됩니다.


비무성애자 중에서도 섹스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섹스의 전반적인 과정은 어쨌든 좀 찝찝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이들 중 대부분은 성적끌림을 느끼는 순간 이런 생각들을 치워버리게 되죠. 그러나 섹스를 싫어하는 무성애자의 경우, 이런 느낌을 중요하지 않게 만들 성적끌림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찝찝한 요소”만이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아닙니다. 몇몇 무성애자는 섹스가 불편하거나 지루해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섹스를 좋아하지 않을 만한 이유는 수천 가지는 되죠.

 

 

섹스를 좋아하지만, “정상적”이지 않게 느껴진다면

이 항목은 섹스를 “추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느낀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톱니바퀴가 잘못 맞물렸다거나, 신발에 껌이 붙은 채로 걸을 때나, 항상 오른쪽으로 끌고 가는 쇼핑카트를 밀 때처럼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에 대한 얘기입니다. 척 보기엔 모든 것이 멀쩡해 보이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잘못돼 보이는 거죠.

어쩌면 당신은 생리적으로 섹스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파트너를 기쁘게 하는 걸 좋아할 수도 있죠. 섹스에는 당신이 정말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뭔가가 빠져 있습니다. 파트너의 반응을 볼 때면, 당신이 느끼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그걸 정확히 지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거기 뭔가가 있다는 걸 당신은 알지요. 파트너의 눈 안에는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꽃 같은 것이 있고, 당신은 그것이 당신의 눈 안에는 없다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됩니다.

이것이 내가 섹스했을 때의 감상입니다. 생리적으로는 매우 좋았지만, 감정적으로는, 나는 그 순간과 내 파트너에게 연결되어 있지 않았어요. 내 파트너는 그것을 원했고, 그것에 빠져 있었고, 수 개월 동안 그 순간을 갈구했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죠. 

 

 

섹스를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했다면

당신은 한 번도 섹스하는 데 진짜로 흥미를 가지거나, 섹스하고 싶다는 충동 또는 생물학적 욕구를 느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섹스를 원하리라고 생각했죠. 그 뒤, 파트너를 만나고, 그 파트너가 섹스를 원하자, 당신은 그게 “다들 하는 것”이기 때문에 했습니다. “내가 하게 되어 있는” 것이라는 이유로 섹스를 계속했어요.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어야겠지만, 당신에게는 의무나 일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은 처음엔 심지어 그것을 경험해 보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쳐갔겠죠. 


처음 성적인 상황에서 타인의 나체를 봤을 때, 그것을 욕구의 대상이 아니라 해부학의 실생활 속 예를 만난 것처럼 관찰했다면


제가 겪었던 경우입니다. 침실에서 제 첫(이자 현재로서는 마지막) 여자친구와 있었던 때예요. 그 사람이 이끄는 대로, 우리는 잠시 서로 지분거리며 놀았어요. 그 사람은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내 침대에 앉은 채, 나를 자신의 앞 바닥에 앉히고, 다리를 벌린 뒤, 반바지를 잡아당겨 치웠죠.

제 생각에 젊은 남성이라면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환희를 감추지 못할 것 같아요. 이것은 그들의 삶의 이정표이고, 그들이 (어쩌면 몇 년이나) 추구해온 것이지요. 그들의 머릿속은 즉각 생각과 가능성과 수많은 판타지로 채워질 겁니다. 이어지는 5분 사이에 그걸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겠지요. 많은 남성에게, 이런 광경은 꿈의 놀이터에 초대받고 마음대로 날뛰라는 말을 들은 거나 다름없을 거예요.

그래서, 제 감상이 어땠냐고요?
“아, 이런 식으로 전체 요소가 균형을 이루는구나!”

성적 충동의 폭발이라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욕구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걸 만질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어요. 그 대신 저는 그것의 지형을 살펴보기 바빴습니다. 마치 지나가는 말로만 들어 본 장소로 가득한 지도를 보는 것 같았어요. 저는 저 아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기관과 부분 하나하나를 모두 확인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 조립되어 있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저는 이제 그때의 사건이 저 자신이 무성애자였음을 나타낸 커다란 단서 중 하나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아니라 움직임에 집중한다면

섹스나 긴밀한 신체적 접촉을 수행할 때, 당신은 감정적 요소보다는 정확하게 움직이는 데 중점을 둡니다. 가령 정해진 위치를 올바른 방식으로 건드린다거나요. 어떤 경우, 당신은 정답 버튼을 모두 눌러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성적 경험을 매우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해 보면 좋아하게 되겠지, 뭐.”

그래서, 당신은 섹스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 그렇게 열성적이지도 않고요. 섹스를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별 관심이 안 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들 그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 아마 한 번 시도해 보면 당신도 그렇겠죠. 아마 한 번 해 보면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건지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걸 “초록 달걀과 햄” 가설이라고 부릅니다.


* 역자주: Green Eggs and Ham은 미국의 유명한 동화입니다. 고양이 Sam이 싫다는 다른 고양이를 따라다니며 초록 달걀과 햄을 먹어보라고 권하는 내용입니다.

You do not like them, so you say.  Try them!  Try them, and you may.  Try them and you may, I say.
이거 안 좋아해, 넌 그렇게 말하지. 먹어 봐! 먹어 봐, 그럼 좋아하게 될 거야. 먹어 보면 좋아하게 될 거야, 날 믿어 봐.


섹스를 일단 해 보면 좋아하게 될 거라는 발상은 강압적입니다. 더 나아가면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정말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있겠느냐는 질문도 나오죠. 대답은, 안 해 봐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커다란 선인장을 직접 껴안아 보지 않아도 그게 불쾌한 경험이 되리라는 건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 섹스는 별로일 거라고 느꼈다면, 직접 해서 자신이 그걸 좋아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는 마세요.

반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걸 경험해 보는 데 거부감이 없고, 적당한 상황이 생긴다면, 해 보세요. 좋아할 수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문제되지 않아요. 저도 그랬고, 그래서 실제로 도전해 봤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섹스하고 “이게 다야?”라고 생각했다면

이거야? 고작 이게 다야?

불꽃이 터지고 기립박수가 나오는 게 아냐?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것 아니었어? 내 전 생애를 통틀어 최고의 경험이어야 하는 거잖아?

이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면서? 왜? 어떻게 이런 게 그 수많은 정치인의 정치인생을 망칠 수 있지?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고작 이걸 인생의 참된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어?

모르겠어, 굳이 따지자면 즐거웠던 것 같긴 한데, 조금, 대충. 하지만 좀 지루하기도 했지.

그러니까, 진짜? 이게 진짜 그거야? 내가 놓친 게 있나?

시시했어요, 어쨌든.

 

 

자위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은 전에 자위를 시도해 봤지만 별 효과가 없고, 아무 느낌도 못 받았을지 모릅니다. 왜 하는지 전혀 모르겠거나요. 자위를 하지만 다른 신체적 기능, 예를 들면 재채기나 경련 같은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죠. 역겹거나 더럽거나 혐오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면서도 그만 하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당신은 자위를 즐겁고 신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죄책감이나 수치심,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그저 즐기지 않는 것뿐이에요.

 

자위하면 됐지, 다른 사람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면

다른 사람들이 섹스 얘기를 하면서 X씨가 자신에게 뭘 했다는 식으로 말할 때, 당신은 “흠,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도움은 필요 없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혼자서도 완벽하게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고, 혼자이니 성적 쾌락을 위해 약속 같은 걸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이들이 자위를 마치 크게 뒤처진 콩라인을 위한 위로상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당신은 좀 혼란스럽죠. 당신에게는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으니까요.

타인과의 섹스에 대해 생각할 때면, 당신은 두 번째 사람 때문에 방해가 되고 일이 꼬일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심지어 이미 섹스를 해 봤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부분이 정말 하나도 없다고 느꼈을 수도 있죠. 

 

 

흥분이 짜증난다면 

 

당신은 흥분을 짜증나는 것으로 느낍니다. 가능한 한 빨리 섹스해서 해결하라는 저 아래로부터의 신호가 아니고요. 그것은 정신을 산만하게 합니다. 제멋대로 찾아오죠.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말 그대로 걸림돌입니다. 만약 그걸 마음대로 멈춰버릴 수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할 겁니다. 그것은 결코 누군가에게 향하지 않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거기 있을 뿐이죠.

 

 

* * *



내일의 결론은 타인과 다른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이 시리즈의 게시물로 가는 링크입니다:

 무성애일지도 몰라 - 1부: 당신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2부: 섹스에 대하여                  

 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