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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가 아닌 것들

2020. 8. 23. 아래 내용은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 [링크] 을 새로운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이전 블로그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무성애가 아닌 것들


Posted on May 27, 2012

원문링크: http://www.asexualityarchive.com/things-that-are-not-asexuality/
번역: 뚜벅쵸

 

 

무성애는 성지향성의 하나로, 성적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다예요. 하지만, 무성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종종 유사한 개념들과 (어떨 때는 심지어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개념과도) 헷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래에서 설명할 구분과 차이점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런 개념들 중 대부분은 꼭 무성애와 상호배제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무성애는 비성관계와 다르지만, 어떤 무성애자가 비성관계자이기도 할 수는 있겠죠.

 

 

 


무성애는 비성관계(celibacy)나 금욕주의(abstinence)가 아닙니다.

비성관계와 금욕주의는 행동을 설명하는 말로, 행위에 대한 것입니다. 비성관계자나 금욕주의자는 섹스를 하지 않습니다. 무성애는 지향성

으로, 끌림에 대한 것이지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지만, 섹스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 역자주: celibacy는 보통 ‘독신주의’로 번역되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성관계의 부재도 상정하는 단어이며 그래서 무성애와 혼동되고 있기에 여기서는 ‘비성관계’로 번역했습니다.

 

 

 

무성애는 성 자체의 부재가 아닙니다.

무성애는 섹스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자위를 못 하는 것도 아니죠. 무성애는 화장을 하거나 멋진 옷을 입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무성애는 섹스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무성애는 불임이나 발기불능이 아닙니다. 무성애는 리비도(libido)가 없는 게 아닙니다. 무성애는 성적끌림이 없는 것이고, 그게 다예요.

 

 

무성애는 동정(童貞)이나 처녀성이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성적끌림을 경험하지 않으며, 섹스를 해본다고 갑자기 성적끌림을 느끼게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무성애자가 섹스 경험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무성애자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 무성애자는 섹스를 경험해 보고서 왜 자신이 거기 그렇게 흥미를 못 느끼는지 고민을 시작하기 전까지, 자신이 무성애자임을 깨닫지조차 못합니다.

 

 

 

무성애는 호르몬 불균형이 아닙니다.

무성애자 중 많은 이들이 호르몬 검사를 통해 자신의 호르몬 대사가 정상수준임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몇몇 무성애자는 다른 이유로 호르몬 치료를 받았지만 성지향성에 대해 어떤 변화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무성애자들은 호르몬 불균형의 다른 징후(탈모, 발기부전, 우울감, 열감 등)를 전혀 경험하지 않으며, 따라서 굳이 특정한 검사를 받지 않더라도 자신의 호르몬이 멀쩡하다는 것을 충분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호르몬 불균형에 의한 성적 관심 상실은 갑작스러운 경우가 많은 한편, 무성애자는 대체적으로 평생 동안 성적끌림을 경험하지 않으니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없었으니까요.

(만약 호르몬 균형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 만한 일이 있다면, 특히 원래는 갖고 있던 섹스에 대한 관심을 갑자기 잃었다면, 병원에 가세요.)

 

 

 

무성애는 섹스를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라는 말이 섹스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닌 것처럼, 무성애자라는 말은 섹스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성애자라는 것 자체로는 한 사람이 섹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무성애자는 섹스를 두려워합니다. 어떤 무성애자는 섹스를 좋아합니다. 어떤 무성애자는 섹스에 관심이 없습니다. 성적끌림을 경험하는 사람 중에도 섹스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무성애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무성애는 순결 서약이나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무성애는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순결서약의 결과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종교적이거나 개인적인 신념을 이유로 섹스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금욕이지 무성애가 아닙니다. 무성애자인 어떤 사람이 종교적인 이유로 성행위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그 사람은 금욕주의자인 동시에 무성애자인 것이 되겠죠. 반면, 종교가 없으며 자신이 종교적 동기 때문에 그렇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무성애자도 많습니다.

 

 

무성애는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성지향성을 가진 이들과 마찬가지로, 무성애자도 원래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야, 있잖아, 이제 섹스나 뭐 그런 건 이제 됐어”라고 생각해서 무성애자가 되겠다고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게이나 이성애자가 되기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무성애자가 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분명 당신은 누구와 섹스할지, 섹스 자체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지만, 그건 행동이지 누구에게 끌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적끌림을 경험하면서 그 끌림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무성애자가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성적끌림을 경험하지 않아요.

※ 역자주: 여기서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born this way)’는 표현은 무성애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지향성이나 성격 등 복잡한 인간의 경향성은 딱 잘라 선천적이다, 후천적이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성애는 질병이 아닙니다.

무성애자들이 공유하는 신체적 문제 같은 건 없습니다. 우리는 종양이나 바이러스나 기생충 때문에 무성애자인 게 아닙니다. 우리 지향성은 전염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자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여자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둘 다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관심이 없으며, 이 중 어떤 경우에도 치료는 필요 없습니다.

 

 

 

무성애는 성적 미숙이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섹스를 안 해 봤거나 충분히 해보지 않아서 무성애자인 게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좋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나서 무성애자인 게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자신의 성적욕구를 감추거나 억누르고 있어서 무성애자인 게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어떤 평생 가는 어린애처럼 순진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무성애자인 게 아닙니다. 무성애자는 성적끌림을 경험하지 않아서 무성애자입니다. 아무리 많은 경험이나 정보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무성애는 신체적 상태가 아닙니다.

무성애의 신체적 징후 같은 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기만 하고 이성애자인지 게이인지 판섹슈얼인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는 것만으로 무성애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무성애자라는 것은 아래쪽의 뭔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기가 없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무성애는 리비도의  부재가 아닙니다.

리비도는 “성적충동(sex drive)”이라고도 불리는데, 성적 만족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나 충동을 말합니다. 어떤 무성애자는 리비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리비도에 기본적으로 방향성이 없을 뿐입니다. 아랫도리의 뭔가가 활발하게 작동하며 관심을 달라고 난리를 칠 수는 있겠지만, 그걸로 인해 누군가에게 성적끌림을 느끼게 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무성애는 젠더정체성이 아닙니다.

무성애는 젠더와는 상관없습니다. 남성 젠더 무성애자, 여성 젠더 무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젠더가 없는 무성애자 다 존재합니다. 무성애는 자신의 젠더나 타고난 신체 부위에 대해 불만스럽거나 불편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성애는 젠더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무성애는 관계적 상태가 아닙니다.

저는 텀블러나 트위터 같은 곳에서 “남자애들 다 개같아, 나 무성애자 돼가고 있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무성애는 성지향성이며, 관계에서의 나쁜 경험 때문에 섹스를 피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이가 섹스를 피하고 있다면, 그것은 독신주의나 금욕이라고 해야지, 무성애라고 부를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안 좋은 이별 경험 때문에 일시적으로 무성애자가 될 수는 없어요. 그거 아닙니다.

 

 

 

무성애는 관계의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남자애들 다 개같아, 나 무성애자임” 같은 맥락에서, 저는 사람들이 “내가 무성애자였음 좋겠다, 그럼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같은 소리를 하는 것도 봤습니다. 무성애는 어떤 이가 로맨틱하거나 성적인 관계를 아예 형성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많은 무성애자가 결국 관계를 만들고, 이런 관계는 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 간의 관계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무성애자가 유성애자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되었을 경우, 성적 관심의 불균형으로 인해 온갖 문제를 다 겪을 수 있지요.

 

 


무성애는 성적 정체기가 아닙니다.

어떤 이가 1주일간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성애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한 달간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성애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일 년간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무성애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10년간 안 해도 무성애자가 되진 않아요. 무성애자라는 타이틀을 보장받기 위해 섹스 없이 보내야 하는 기간 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무성애가 아니니까요. 무성애는 성적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것이지, 섹스의 부재와는 상관없습니다.